[디지털데일리]지난 주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에서는 SAP의 연례 고객행사인 '사파이어 2008'이 개최됐다.
매년 이 행사를 참관해 왔지만, 올해는 SAP같은 글로벌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업체들이 최근 딜레마에 빠져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여느해와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SaaS)가 그렇다.
'SaaS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SAP는 아직 완전한 입장정리가 안 된 듯한 모습이었다.
사실 이미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패키지 시장에서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SAP 입장에서는 최근의 SaaS 흐름이 반가울 리가 없다. 기존의 시장구도와 흐름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SAP 경영진 사이에 SaaS 시장에 대한 관점이 엇갈리기도 했다.
핫소 플래트너 SAP 회장은 사파이어 2008 기조연설에서 “온디맨드(SaaS)가 소프트웨어 업계의 대세라는 것은 구글과 세일즈포스닷컴이 보여주고 있다”면서 “SAP도 이것이 대세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플래트너 회장은 SAP가 중견기업용으로 발표한 SaaS형 통합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스위트인 ‘비즈니스 바이디자인’을 소개하며, 앞으로 이 서비스가 중견기업 시장을 강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해닝 카거만 SAP CEO는 SaaS 시장 전망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기자들과 만나 “SaaS가 불가능한 영역이 많다”며 “모든 고객이 SaaS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애플리케이션 통합 등의 문제 때문에 전체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을 SaaS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중견중소기업 시장에서도 SaaS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카거만 회장은 “우리는 SMB 시장의 32~36%를 점유하고 있다”면서 “SMB 시장은 매우 크지만 SaaS 시장은 그 중의 일부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SAP를 이끄는 두 리더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SAP는 SaaS형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진행하면서도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않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앞 서 언급한 SAP의 SaaS 모델 신제품인 ‘비즈니스 바이디자인’은 이미 지난 해 출시했으면서도 세계 6개국에서만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올해말이나 내년초 선보인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일본 같은 큰 시장에도 아직 선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SAP의 입장은 미래의 소프트웨어 유통구조에 대한 확신이 아직 확실하게 서지 않기 때문인 듯 보인다.
기존 패키지 시장에서의 강점을 버릴 수는 없고, 또한 SaaS의 파급력이 어디까지 미칠 지 장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거대 SW기업인 SAP에 혼란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SaaS 흐름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SaaS에 올인(!)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SaaS가 미래의 소프트웨어 유통의 대명사로 떠오를 지, 아니면 애플리케이션임대서미스(ASP)처럼 한 때 유행으로 지나갈 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SAP는 세계 최대의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업체로서 수 많은 고객과 파트너들에게 나아갈 진로를 밝혀줘야 할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SAP가 방향을 잡지 못하면, 고객과 파트너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SAP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 진다.